‘명단장’ 최종준 전 LG 트윈스 단장이 말하는 “1990년, LG 트윈스가 프로야구를 지배했을 때”

‘명단장’ 최종준 전 LG 트윈스 단장이 말하는 “1990년, LG 트윈스가 프로야구를 지배했을 때”

- 창단 30주년 맞은 LG 트윈스, 1990년 창단 첫 해 우승 어떻게 가능했을까
- 창단 주역 최종준 전 단장이 말하는 긴박했던 한 달 반의 창단 과정
- 호돌이 디자이너가 유니폼 디자인, NFL 구단 응원가 가져와 대히트
- 구단주 전폭적 지원, 선진 프런트, 앞서간 마케팅으로 프로야구에 ‘돌풍’

사진|1990년과 1994년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한 LG 트윈스

올 시즌 LG 트윈스는 유력한 우승 후보 가운데 하나다. 탄탄한 선발진과 강력한 불펜, 짜임새 있는 타선으로 경쟁력 있는 전력을 구축했다.

 

우승해야 하는 이유도 많다. 최고참 박용택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자, LG 류중일 감독의 3년 계약 마지막 해다. 무엇보다 ‘창단 30주년’이란 상징성이 2020시즌 ‘대망’을 꿈꾸게 하는 동력이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창단한 LG는 이후 30년간 KBO리그의 황금기와 함께했다. 창단 첫 해부터 바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신바람 야구’ 돌풍과 함께 한국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진 시스템과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경쟁 구단들보다 앞서 나갔고, 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하며 젊은 팬을 끌어모아 야구 붐을 일으켰다.

 

이런 LG의 창단 초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국내 최고의 스포츠 행정가이자 최초의 메이저리그식 GM으로 알려진 최종준 전 단장이다.

 

1990년 창단 준비 과정부터 LG 트윈스와 함께한 최종준 전 단장은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보고 배운 여러 혁신적 시도를 통해 LG가 강팀이자 인기 구단으로 뿌리내리는데 기여했다. 엠스플뉴스는 최종준 전 단장과 만나 LG가 프로야구를 지배했던 1990년대 초반으로 잠시 시계를 돌렸다.

 

긴박했던 창단 준비...호돌이 디자이너가 만든 유니폼, NFL 팀에서 빌려온 응원가

사진|LG 역대 유니폼. 왼쪽 상단에 창단 준비 과정에서 임시로 만든 유니폼이 보인다

최종준 전 단장은 원래 ‘상사맨’이었다.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1977년 ‘럭키금성(현 LG)’ 그룹에 합격해 곧장 상사 기획실에 입사했다.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보스턴 백을 들고 전 세계를 누비는 상사맨을 목표로 무역학과에 진학했고, 상사에 입사했다” 최종준 전 단장의 말이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비롯한 온갖 스포츠를 섭렵하기는 했지만, 스포츠계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최종준 전 단장은 고교 시절 농구, 축구 반 대표 선수였다. 대학 시절에도 학교 동아리에서 선발투수로 나갔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야구 동아리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야구단 일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했다.

 

당시 럭키금성 야구 동아리에는 지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이 많았다. 구본능 전 KBO 총재가 감독이었고, GS 그룹 허창수 회장이 당시 구단주 역할을 맡았다. LS 그룹 구자열 회장도 야구를 참 잘했고, 예술의 전당 사장을 지낸 신홍순 씨도 멤버였다”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최종준 전 단장은 최고 인재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미국 뉴욕 지사 파견 근무 기회를 받았다.

 

상사 직원들의 최고 희망사항은 국외 지사 파견이다. 특히 30여 개 지사 중에 1순위가 뉴욕 지사였는데, 내가 뉴욕 지사를 맡게 돼서 꿈이냐 생시냐 했었다. NFL 팀 뉴욕 자이언츠 홈 구장 근처 사무실에서 6년 반 동안 일했다. 나중에는종합상사 실태조사’에 회사 대표로 뽑혀 석 달 동안 일본에도 다녀올 기회가 주어졌다”

 

상사맨으로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 밟았던 최종준 전 단장의 진로가 크게 바뀐 건 1989년 12월. 당시 럭키금성은 MBC 청룡을 인수해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기로 결정하고, 주식회사 LG 스포츠 설립 준비를 시작했다.

 

이듬해 시즌 개막까지 3개월의 시간 안에 야구단을 만들어야 하는 긴박한 일정. 스포츠에 해박하고 오랜 외국 생활 경험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최종준 전 단장이 적임자였다.

 

“구단 창단식을 시즌 개막 2주 전인 3월 15일로 정했다. 창단식 한 달 반을 앞두고 프런트가 급히 꾸려졌으니 불난 호떡집 저리가라였다. 창단 준비 팀장을 맡은 뒤 정신없이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그룹 홍보실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사진|LG는 신바람 야구란 슬로건과 함께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시즌이 코앞인데 구단 로고도, 유니폼도 정해진 게 없었다. 최종준 전 단장은 선수단은 백인천 감독의 인솔 하에 대만에 전지훈련을 가 있었다. 부랴부랴 ‘럭키금성’ 로고를 넣은 임시 유니폼을 급조해서 대만에 보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팬들 앞에 선보인 적 없는 이 유니폼은 현재 이천 챔피언스필드 역사관에 역대 유니폼과 함께 전시돼 있다.

 

구단 이름은 그룹 임직원 대상 공모를 통해 지었다. ‘럭키금성(Lucky Gold Star)’의 이니셜을 딴 LG에 여의도 트윈타워 건물에서 딴 ‘트윈스’를 합해 LG 트윈스가 탄생했다. 쌍둥이 로봇이 타격 자세를 취한 모습의 마스코트는 ‘인간을 존중하는 그룹 정신’을 반영했단 설명이다.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 디자인은 유명 디자이너가 맡았다. 최종준 전 단장은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만든 김현(현 디자인파크 대표) 씨가 유니폼 디자인을 맡았다. 가능한 한 특이하게 만들어 달라, 깔끔하면서도 세련되고 젊은 느낌을 살려달라고 주문해서 나온 유니폼”이라 설명했다.

 

김현 디자이너는 LG 외에도 현대 유니콘스, 빙그레 이글스 등 여러 프로야구단과 KBL, WKBL 협회 및 구단 로고를 디자인한 바 있다.

 

 

응원가에도 신경을 썼다. 최종준 전 단장은 당시만 해도 선수별 등장음악 같은 게 없을 때다. LG는 타자 등장음악, 삼진 당했을 때 나오는 효과음을 하나하나 만들었다. 메이저리그처럼 오르간을 가져다 연주하는 흉내도 냈다”고 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나~가자 LG 싸~우자 LG’로 시작되는 공식 응원가. 사실 이 곡은 창작곡이 아닌, NFL 팀 워싱턴 레드스킨스 응원가(Hail to the Redskins)를 번안한 곡이다.

 

최종준 전 단장은 레드스킨스가 터치다운에 성공했을 때 응원단에서 나오는 노래가 있다. 가수 김도향 씨에게 부탁해 가사를 붙인 뒤, 워싱턴 구단에 보내 허가를 받고 사용했다”고 떠올렸다.

 

“창단식 전까지 그야말로 주말도 없고 밤낮도 없이 일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날짜는 정해져 있고 준비해야 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한다면 하지 않나” 최종준 전 단장이 껄껄 웃으며 들려준 말이다.

 

‘최고의 구단주’ 故 구본무 회장 “전폭적 지원, 운영은 구단에 맡겼다”

사진|1990년 우승을 차지한 뒤 그룹·구단 임원들과 함께

천신만고 끝에 창단식을 무사히 치른 LG는 개막 2연전에서 서울 라이벌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 2전 전패를 당했다. 일반 스포츠 팬 시절에는 응원팀 경기도 이기면 이기는 거고, 져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우리 구단이 되니까 완전히 느낌이 다르더라” 최종준 전 단장의 말이다.

 

전반기 막판까지도 LG는 좀처럼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종준 전 단장은 한 번은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 신문을 펼쳤는데, 글쎄 LG가 최하위로 추락해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전반기 마지막 경기 연장전 역전승으로 반등의 계기를 만든 LG는, 여름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와 정규시즌 1위로 시즌을 마쳤다.

 

한국시리즈에서는 강호 삼성 라이온즈를 4승 무패로 꺾고 창단 첫 해 우승이란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모 기자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할 정도로, 생각지도 못한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백인천 감독의 중도사퇴로 잠시 주춤했던 LG는 1992년 ‘자율야구’의 개척자 이광환 감독을 맞아들였다. 이광환 감독이 스포츠 신문에 쓴 칼럼을 읽고 다른 야구인들보다 훨씬 진보적인 분이란 판단을 했다. 구단이 원하는 메이저리그식 야구에 적합한 분이라는 생각에 영입했다. 예상대로 구단과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최종준 전 단장의 말이다.

 

OB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이광환 감독의 야구는 LG에서 비로소 꽃을 피웠다. 1993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LG는 1994년 ‘신바람 야구’ 돌풍과 함께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투수 분업화, 전문 마무리 투수 등 KBO리그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도 1994년 LG 우승의 효과다.

사진|LG 트윈스의 역사가 담긴 기념품들

LG 트윈스가 창단하자마자 프로야구에 돌풍을 일으킨 비결은 무엇일까. 최종준 전 단장은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과 메이저리그식 구단 운영을 언급했다.

 

“돌아가신 구본무 회장은 야구단에 애정이 정말 강했다. 선수들 얼굴과 이름도 다 기억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한 번은 일본 전지훈련 때 사복 입은 선수들을 보면서도 대부분의 이름을 다 알아맞히더라. 불펜 포수, 배팅볼 투수 빼고는 거의 다 맞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포츠 신문을 꼼꼼히 읽고 선수 개개인의 가정사까지 기억했다가 대화 소재로 삼는 분이었다” 최종준 전 단장의 말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최고의 구단주’가 지녀야 할 두 가지 덕목이다. 구본무 전 회장은 이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최종준 전 단장은 절대적으로 구단에 자율권을 주셨다. 2주에 한 번씩 찾아가 보고를 하고, 예산도 따내고 했지만 구단에 맡겨 주셨다. 한대화 트레이드도 구단이 맡아서 진행했고, 이광환 감독 영입도 구단이 주도해 진행했다”고 회상했다.

 

구단주의 전폭적 지원 속에 시설에도 아낌없는 투자가 이뤄졌다. 창단 때부터 10년 청사진을 만들었다. 라커룸도 새로 만들고,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을 바꿨다. 외국에서 트레이닝 관련 자료를 구해다 적용했고, 트레이너도 미국에서 AT 자격증을 딴 사람들로 뽑았다. 구리와 진주에 야구장도 세웠다. 그런 일 하나하나가 다 돈이었는데, 회장님이 백업을 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종준 전 단장의 기억이다.

 

“자녀들도 LG팬...LG 보면 ‘우리가 만든 구단’이란 생각 들죠”

사진|창단 초기 LG 회원카드. 어린이팬 모집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LG다

현장과 구단의 역할 분담도 잘 이뤄졌다. 최종준 전 단장은 일단 배가 출항하면 그때부터 모든 권한은 선장의 몫이다. 하지만 출발 전에 짐을 싣고, 손님을 태우고, 조련사를 구하고 마케팅하는 건 선사의 역할”이라며 감독과 단장의 역할 분담을 설명했다.

 

당시 LG는 감독이 다른 걱정 없이 경기 운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런트의 역할에 충실했다. 일례로 매끄러운 연봉 협상 과정을 들 수 있다.

 

당시는 FA 제도가 없고 선수 연봉이 많지 않다 보니 재계약하기가 참 힘들었다. 연봉 계약을 무사히 잘 마치고, 전지훈련 출발할 때 아무 이상 없이 전원을 보내는 것. 그게 프런트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선수들 집 근처까지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가면서 연봉 계약에 공을 들였다”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신경 썼다. 최종준 전 단장은 시즌이 시작하면 동대문 야구장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아마야구 경기를 보려는 게 아니라, 스카우트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카우트가 중요한 일이니까, 함께 식사도 하고 격려하면서 힘들 주려고 했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들이 당시 LG 스카우트를 꽤 부러워했다고 들었다”

 

강한 프런트는 마케팅과 팬 서비스에도 강하다. 최종준 전 단장은 구단의 미래를 위해서는 팬층이 넓어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1990년 첫 해부터 어린이 팬을 모으려고 애썼다. 서울 시내 곳곳에 트윈스 코너를 만들어 용품도 팔고 회원도 모았다”첫 해 우승한 뒤 어린이 팬이 빠르게 늘었다. 어린이 회원만 5만 명을 모았다. 빨간색과 검정색이 섞인 LG 잠바를 입은 어린이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최종준 전 단장은 첫 해부터 우승하고 신바람 야구 붐이 일면서 관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경기 내용이 재미있고 마케팅을 열심히 하니까, 신인 선수들이 다들 LG에 오길 원했다”지금이야 두산이 성적도 좋고 인기도 좋지만, 당시에는 LG와 OB를 비교하면 관중 동원이나 뉴스 생산량에서 7대3 정도로 LG가 우세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진|LG 시절 최종준 단장. 이후 각종 스포츠단을 거쳐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지냈고 현재는 대한바둑협회 부회장으로 체육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LG에서 창단 준비 팀장과 운영부장, 단장을 거친 최종준 전 단장은 이후 LG 농구단과 축구단, SK 와이번스, 대구 FC 등 여러 팀을 거쳐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최종준 전 단장은 LG 트윈스를 보면 ‘우리가 함께 노력해서 만든 구단’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에도 LG 경기를 계속 챙겨본다”고 했다.

 

“자녀들도 다들 LG를 좋아한다. 다들 어린이 회원 출신이다. 오랫동안 야구를 보다 보니까, 사람이 한 번 응원한 팀은 쉽게 바뀌질 않더라. 그때 당시 어린이 회원으로 LG를 응원한 분들도, 다 지금까지 LG를 응원하지 않나” 30년 LG 트윈스 역사의 시작을 함께한 ‘명단장’의 말이다.

 

 

 

출처 : 엠스플뉴스 - [엠스플 레전드] ‘명단장’ 최종준이 말하는 “1990년, LG가 프로야구를 지배했을 때” (https://www.mbcsportsplus.com/news/?mode=view&cate=1&b_idx=9981523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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