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 계속되는 KBO리그 연봉 협상, ‘연봉 조정 신청’은 왜 대안이 되지 못했나

잡음 계속되는 KBO리그 연봉 협상, ‘연봉 조정 신청’은 왜 대안이 되지 못했나

KBO리그는 출범 33년 만인 2014년에 ‘평균 연봉 1억 원 시대’를 열었다. 그 후 상승세는 더 가팔랐다. 5년이 지난 지난해 전체 선수 평균 연봉은 1억 5,065만 원까지 뛰어 올랐다. 올 시즌 역시 전 선수의 연봉 계약이 완료되면 평균 연봉이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연봉 협상을 둘러싼 잡음은 사라질 줄 모른다. 10개 구단이 일제히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NC 다이노스 불펜의 핵심 투수 가운데 한 명인 김진성(35)스프링캠프 시작 이틀 째인 지난 2월 2일 다시 귀국길에 올랐다.

사진|2020시즌 연봉 협상에서 구단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스프링캠프에서 이탈한 김진성 (출처.NC 다이노스)

김진성은 캠프지 도착 후 곧바로 운영팀장과 연봉 협상을 했고, 결국 지난해 2억 원에서 4,000만 원(20%) 깎인 1억 6,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구단에 면담을 신청해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은 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국행을 자청했다.

 

프로 선수에게 ‘스프링캠프 중도 이탈’이란 한 시즌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위험까지 감수하겠다는 의미다. 심지어 NC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미국 애리조나는 편도 이동에만 거의 하루가 걸리는 먼 곳이다. 그러나 김진성은 끝내 한국으로 돌아와 마산구장에서 2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게 됐다.

 

사전에 갈등을 원만하게 봉합하지 못한 NC 구단과 계약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해 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든 김진성 모두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삼성 라이온즈도 간판 타자인 구자욱(27)과의 불협화음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계약을 구단에 백지 위임해 3억 원을 받았던 구자욱은 올해 최소한 연봉 동결을 바랐다. 반면 삼성은 고과 기준상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사진|2020시즌 삼성 라이온즈와 연봉 계약을 맺지 못하며 스프링캠프에 떠나지 못한 구자욱 (출처.삼성 라이온즈)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구자욱이 끝내 오키나와 캠프를 떠나지 못하고 대구에 남으면서 양측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도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프로는 ‘몸값’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연봉을 둘러싼 구단과 선수의 대립은 아주 오래전부터 피할 수 없던 전쟁이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창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KBO리그에서 3시즌 이상 뛴 선수라면 누구나 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KBO 규약 제75조에는 ‘구단과 보류선수 사이에 연봉 등 금전에 관한 사항이 합의되지 않은 경우, 구단 또는 선수가 총재에게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매년 1월 10일 오후 6시 이전까지 연봉 계약에 합의하지 못했을 때, KBO에 결정권을 넘기는 제도다.

 

구단과 선수는 연봉 조정 신청 마감일 이후 5일 안에 각각 주장하는 연봉 산출 근거 자료를 KBO에 제출해야 하고, 그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조정 신청이 취하된 것으로 본다.

 

일단 KBO로 공이 넘어간 이상, 양쪽 모두 무조건 결과를 수용하고 10일 내에 계약을 완료하는 게 원칙이다. 구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선수의 보류권을 잃고, 선수가 거부하면 임의탈퇴로 묶여 최소 1년간 KBO리그에서 뛸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단 연봉 조정 신청을 해놓고도 5일이 채 지나기 전에 그냥 구단 제시액에 사인해버린 선수가 적지 않다. 과거 같은 일을 경험했던 한 선수는 “예전에는 1월 15일쯤 스프링캠프를 떠났기 때문에 캠프에 함께 갈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며 “서류 작업에 전문가들인 구단과 달리 우리에게는 증빙 자료를 준비하는 일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어차피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면 그냥 내년을 기약하는 게 정신 건강에 낫다고 생각했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구단과 선수가 ‘끝까지’ 대립해 연봉조정위원회까지 열린 사례는 총 20회에 불과하다. 1984년 해태 타이거즈 강만식MBC 청룡 이원국이 시작이었고, 2011년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마지막이었다.

 

2002년에는 LG 트윈스에서만 김재현, 이병규, 전승남, 유지현까지 총 네 명이 연봉 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유일한 승자는 유지현뿐이었다.

사진|역대 KBO 연봉 조정 신청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LG 트윈스 유지현 코치의 선수 시절 모습 (출처.LG 트윈스)

구단은 전년도 연봉 2억 원에서 1,000만 원 삭감된 1억 9,000만원을 제시했지만, 유지현은 2억 2,000만 원을 요구해 결국 받아냈다. 20회의 연봉조정위원회에서 선수가 자신의 요구액을 인정받은, 유일한 사례였다.

 

나머지 19회은 모두 구단이 이겼다. 롯데 김시진OB 베어스 장호연(이상 1991년), 삼성 이만수(1992년), 해태 조계현(1994년) 등 쟁쟁한 스타 플레이어들도 예외는 없었다.

 

유일한 승자인 LG 유지현 코치에게도 상처는 남았다. 공개적으로 구단에 ‘반항’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고, 선수 생활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연봉 조정 신청 사례가 나올 때마다 언론의 인터뷰 공세도 쏟아졌다. 유지현 코치는 이후 누군가 상담을 해올 때마다 “웬만하면 끝까지 가지 말고 구단과 타협하라”고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2009년에는 당시 두산 베어스 소속이던 정원석은 연봉 조정 신청서를 냈다가 37분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구단 제시액은 4,200만 원, 정원석의 요구액은 4,4000만 원. 단 200만 원 차이로 감정싸움을 벌이다 터진 일이었다. ‘37분의 반항’을 시도했던 정원석은 공교롭게도 그 시즌을 끝으로 두산에서 방출됐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선수는 단연 2011년의 이대호였다. 이대호는 2010시즌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 타이틀을 휩쓸면서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에 올랐다. 9경기 연속 홈런을 쳐 세계 기록도 세웠다.

사진|2019시즌을 앞두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신임회장으로 임명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대호 (출처.롯데 자이언츠)

이대호는 그 해 3억 9,000만 원이던 연봉을 7억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롯데는 6억 3,000만 원을 제시했다. 7,000만 원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대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팀 성적과 형평성을 이유로 연봉을 거의 올려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롯데는 “2003년 삼성 이승엽이 받았던 연봉보다 많이 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조정위원회는 늘 그랬듯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이대호는 1년 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었고, 롯데의 4년 100억 원 제안을 뿌리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연봉 조정 신청서를 냈던 선수는 2012년 LG 소속이던 이대형(kt 위즈)이다. 2011년 1억 4,000만 원을 받았던 이대형은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자 LG는 5,500만 원이 깎인 8,500만 원을 2012년 연봉으로 책정했다.

 

이대형은 “삭감폭이 지나치게 크다”며 1억 2,000만 원을 요구했다. 3,500만 원의 격차를 놓고 오랜 줄다리기가 이어졌고, 결국 이대형이 KBO에 연봉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때도 조정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이대형은 신청 사흘 만에 끝내 구단 제시액인 8,500만 원에 도장을 찍고 다음날 스프링캠프지로 출국했다. 이후 8년이 흐른 지금까지 연봉 조정을 신청한 선수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보이는 연봉 조정 신청이 오랜 기간 유명무실한 제도로 남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단은 선수의 연봉 조정 신청을 ‘항명’으로 받아들여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선수들은 ‘어차피 질 텐데 뭐하러 신청하느냐’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포기한다.

 

그러나 지방 A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2018년부터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면서 예전과는 연봉 협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선수에게 1억 원을 주고 싶으면 구단에서 먼저 8,000만 원을 부르고 시작했다. 일부러 낮게 제시한 다음 금액을 올려야 선수가 ‘내가 2,000만 원을 더 받아냈다’고 만족스러워할 수 있어서였다”“요즘은 선수는 물론이고 에이전트들이 자료를 잘 준비해오기 때문에 오히려 구단 산정액을 확실하게 밝히는 방식이 더 신뢰도를 높인다. ‘구단이 줄 수 있는 최대치가 이 정도’라고 먼저 선을 긋고 물러서지 않는 게 서로에게 더 정직한 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KBO 에이전트는 선수들의 FA(프리에이전트) 대박 계약만을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다. 연봉 협상에서 고객인 선수가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고 판단했을 때는 과감하게 연봉 조정 신청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과거 연봉조정위원회는 종종 “선수가 제출한 근거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구단 제시액을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이른바 ‘페이퍼 워크’에 능한 구단들이 선수들에 비해 유리한 게 당연했다. 하지만 에이전트가 선수를 대리할 수 있는 요즘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구단들 역시 “주축 선수와 갈등이 불거져 이래저래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연봉 조정을 통해 정리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자세로 변하고 있다.

 

수도권 A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오래 버티는 선수의 몸값을 못 이긴 척 올려줬다가 먼저 계약한 다른 선수들의 불만을 듣느니, KBO를 통해 공론화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해결하는 게 나을 수 있다”며 “지금은 총재가 조정위원회 위원들을 독자적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여기에 구단 측이나 선수 측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위원들이 포함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구단과 선수 모두 애초에 서로에게 터무니 없는 금액을 제시하지 않는 게 먼저다. 구단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팀과 리그의 형평성에 맞는 연봉을 산정해야 하고, 선수는 스스로의 능력과 위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수치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연봉은 프로 선수 한 명의 가치와 존재감을 숫자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잣대이자 기준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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