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외국인 선수 열전] 다니엘 리오스 (Daniel Rios)

[KBO 외국인 선수 열전] 다니엘 리오스 (Daniel Rios)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후 어느덧 37번째 시즌이다. 원년 6개 팀으로 팀당 80경기의 시즌을 치렀던 KBO리그는 이제 10개 팀이 됐고 팀당 치르는 경기 수도 144경기로 훌쩍 늘었다.

 

그만큼 순위 싸움도 치열해지고 볼거리도 다양해졌다. 그 가운데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은 팀의 한 시즌 성적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해져 외국인 선수의 활약 여부가 야구 팬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

 

KBO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는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력 가운데 하나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외국인 투수로는 두산 베어스 조쉬 린드블럼, LG 트윈스 타일러 윌슨, SK 와이번스 앙헬 산체스 등이 있다.

 

그렇다면 내로라하는 역대 외국인 투수들 가운데 손꼽히는 선수는 누구일까.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에서 뛰며 2007년 22승을 기록, 2016년 더스틴 니퍼트의 22승과 더불어 KBO리그 역대 외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을 보유하고 있는 다니엘 리오스는 여전히 야구 팬들의 기억에 잊히지 않고 있다.

 

KBO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투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리오스는 2008년 KBO리그를 떠나 1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활약했던 6시즌 동안 90승을 올려 8시즌 동안 100승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니퍼트에 이어 여전히 외국인 투수 통산 최다승 2위에 자리하고 있다.

 

리오스는 1997년 뉴욕 양키스 선수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경기에 나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9.29를 기록하며 크게 부진했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팀을 옮겼으나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05의 성적만을 남기며 큰 활약을 하지 못했고 그렇게 리오스는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KBO리그에 관심을 보인 리오스에게 먼저 접촉한 쪽은 KIA의 전신 해태 타이거즈였지만 사실, 리오스는 KIA가 아닌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할 뻔했다.

 

2001년초 해태는 리오스를 영입하려 했으나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외국인 선수는 무조건 보스턴이 추천해주는 선수만 받는다”라는 조항과 리오스 쪽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요구하며 협상이 결렬되었다.

 

이후 시즌 중 팀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며 KIA로 팀명을 변경한 뒤, 당시 외국인 타자였던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가 부진의 기미를 보이자 그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리오스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리오스가 방광염 증세를 보이며 한국 입국을 거절해 계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후 리오스는 삼성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본래의 자기 피칭을 보야주지 못해 퇴짜를 맞았고 이는 방광염 증세가 완쾌되지 못했던 탓으로 보인다.

 


 

KIA 타이거즈 시절

 

결국 리오스는 2002년 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와 공식적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

 

KIA 입단 후 처음에는 팀 사정상 마무리 보직을 맡았으나 원체 선발투수 타입인 선수인지라 갑자기 맡게 된 마무리 보직 적응에는 시간이 걸렸다.

 

초반에는 더블헤더 연속 경기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5월 이후로는 세이브 상황에서 종종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김성한 前 감독 속을 까맣게 태웠고, 한때 ‘9시의 공포’라는 별명으로 통할 만큼 마운드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그러나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어 있던 최상덕의 부상을 틈타 선발진에 합류한 리오스는 불안했던 마무리 보직에서의 모습과 달리 안정된 피칭을 선보이며 첫 시즌 54경기에서 14승 5패 1홀드 13세이브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해 19승을 올린 마크 키퍼와 함께 KIA의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리오스의 2003시즌은 부진과 호투가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시즌으로 10승 13패 평균자책점 3.82에 그쳤다.

 

그 때문에 재계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부에서 논란이 잠시 있었으나 리오스는 조금 삭감된 연봉에 재계약하며 2004년에도 KIA에서 뛰게 되었고 결국 그 해 32경기 222.2이닝 17승 8패 평균자책점 2.87로 삼성의 배영수, 두산의 게리 레스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라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한 시즌에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한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2005년에는 전년도와 달리 공이 맞아나가는 빈도도 늘고 부진에 빠졌다.

 

팀 역시 부상 선수가 속출하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꼴찌를 달리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당시 최악이었던 KIA의 경기력을 감안하더라도 리오스의 전반기 성적은 6승 10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그것을 빌미 삼아 KIA에서는 김성한 前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리오스를 퇴출하려 했으나 팬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결국 트레이드로 방향을 선회했고 2005년 7월 10일 시즌 도중 KIA는 내야수 김주호와 리오스를 주고 두산의 좌완 유망주 전병두를 받는 2:1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리오스는 두산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두산 베어스 시절

 

2005년 시즌 중 트레이드 되어 두산으로 이적한 리오스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투수 친화적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게 됨과 동시에 두산의 탄탄한 수비력까지 리오스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며 후반기에만 13경기에 출장해 9승 2패 평균자책점 1.37로 활약한다.

 

덕분에 두산은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2005시즌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2006년에도 리오스는 최다 이닝 1위에 오르며 역시 잘 던졌으나 팀의 간판타자 김동주가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한 후 어깨 부상을 입어 시즌을 절반 넘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리오스 등판 경기도 득점 지원이 줄어들었다.

 

34경기 12승 16패로 비록 승수보다 패수가 많기는 했지만, 리오스는 223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90의 뛰어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

 

그리고 2007시즌, 리오스는 자신의 커리어 하이 기록을 작성했다. 234.2이닝 22승 평균자책점 2.07이라는 괴물 같은 기록을 수립한 것.

 

그 이전에,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9구 3삼진’이라는 역사를 쓴 적도 있었다. 2007년 6월 1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치러진 SK 와이번스전 8회말 이진영-박경완-최정을 모두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KBO리그 역사의 대사건이었다.

 

리오스의 2007년 공헌은 특히 9월에 엄청난 연투로 두산의 KBO리그 2위 사수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

 

2007년 9월 20일에는 수원 현대 유니콘스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8피안타 2볼넷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1999년 정민태 이후 8년 만에 20승의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다.

 

2007년 10월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현대와의 경기에서는 9회까지 무안타와 무사사구, 단 1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는 피칭으로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퍼펙트 경기 달성을 눈앞에 두었으나 두 타자만을 남겨놓은 9회초 1사 상황에서 포수 강귀태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퍼펙트 기록 달성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보는 이들의 이목(耳目)을 집중시키며 특히 두산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경기였다. 그러나 매 경기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리오스의 노예 피칭에 혹사 논란도 뒤따랐고 특히 김성근 前 감독은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의혹을 던질 정도였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리오스는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출장했고 1차전에서는 9이닝 4피안타 1볼넷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며 두산이 기세를 잡는데 큰 공헌을 했다.

 

여기서 김경문 前 감독은 리오스를 3일 휴식 후 4차전에 등판시키는 강수를 썼고 결과는 5이닝 9피안타 1볼넷 2피홈런으로 3실점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두산은 2001년 이후 6년 만의 우승을 노렸지만 리오스가 무너지면서 결국 5, 6차전까지 내리 패하며 2승 뒤 4연패라는 유례없는 사례로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

 

이후 2007년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 투수 부문 외국인 선수 첫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된 리오스는 2007년의 시즌이 끝난 뒤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리오스는 2007년 12월말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2008년 95만 달러를 받고 옵션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이듬해 보너스 포함 최고 275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1+1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리오스는 2008시즌 2승 7패 평균자책점 5.46으로 부진했다. 한국에서 김경문 前 감독에게 계속해서 지적받던 폼이 일본에서는 보크로 판정되어 투구폼을 수정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후 평균자책점이 급상승하며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08년 6월 28일 일본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도핑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금지 약물로 지정된 스테로이드계 약물 가운데 하나인 ‘하이드록시 스타노조롤(Hydroxy Stanozolol)’을 복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리오스는 2007년 11월 치료를 받으며 주사한 것으로 이후 복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야구기구(NPB)에서는 “6개월 동안이나 약품이 체내에 잔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여론에서는 리오스가 한국에서의 오버페이스 이후 일본에서 급락한 성적으로 인해 ‘리오스 약물 복용설’에 무게가 실린다는 주장을 했고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리오스가 한국에서도 약물을 복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제기하는 한편, KBO에서는 리오스를 대상으로 도핑 테스트를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리오스는 NPB로부터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고 야쿠르트 구단은 계약 위반을 이유로 센트럴리그 연맹에 리오스와의 계약 해지를 요청했으며 동시에 리오스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2007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운동선수는 불과 6개월 만에 최악의 오명과 함께 몰락했다. 이후 리오스는 대만리그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구단이 잘 연결되지 않았고 사실상 은퇴했다.

 


 

야구 인생 막바지에 금지 약물 복용으로 불명예를 얻기는 했지만 리오스가 KBO리그에 남긴 성적과 투구만을 본다면 대단한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200이닝을 넘는 투구로 4년 연속으로 소화 이닝 1위를 기록하고 6년 평균 207이닝을 소화하는 등 최고의 이닝 소화 능력을 보여주었다.

 

금지 약물 복용만 아니었으면 레전드로 남을 수도 있었던 선수, 이승엽의 일본 진출 이후 투수들의 시대가 된 2000년대 후반을 장식한 명투수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였다.

 

자기관리나 사생활 등에서도 모범적이어서 한때는 한국형 외국인 선수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인간성과 적응력도 뛰어나 KIA 시절에는 전라도 외국인 ‘이오수’라는 한국식 별명으로 불렸으며 한국식으로 동료나 구단 스태프 경조사도 잘 챙겨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던 리오스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약물 파동으로 인해 잊혔다.

 

리오스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 KBO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였고, 금지 약물 복용 의혹을 받을 당시 다승왕과 최우수 선수를 차지했던 선수다. 때문에 자신이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그에 따른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본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표.1다니엘 리오스의 KBO리그 통산 성적

 

다니엘 리오스 (출처.인스타그램 @340_studio)

 

이름 : 다니엘 리오스 (Daniel Rios)

생년월일 : 1972년 11월 11일생 (스페인 마드리드 출생)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소속 팀 :
뉴욕 양키스 (1997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8년~1999년)
KIA 타이거즈 (2002년~2005년)
두산 베어스 (2005년~2007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8년)

 

수상 내역 :
2004년 한국 프로야구 다승왕
2005년 한국 프로야구 탈삼진왕
2007년 한국 프로야구 다승왕
2007년 한국 프로야구 승률왕
2007년 한국 프로야구 최우수 평균자책점
2007년 한국 프로야구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7년 한국 프로야구 최우수 선수

 

리오스가 비판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비판이 리오스 한 명에게만 집중되는 건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진갑용은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두산 베어스 박명환은 2006년 WBC에서 도핑 테스트에 걸렸지만 여론에서 별로 문제 제기를 받지 않았다.

 

정황상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게 확실해 보이니 리오스의 기록이 흑역사로 취급받아야 한다면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게 확실한 진갑용이나 박명환 역시 똑같이 대우받아야 하는데 이 둘은 그런 게 거의 없다.

 

특히 진갑용은 약물 복용 사실도 잊힌 채 삼성의 레전드 대우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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