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Legend] LG 트윈스 ‘원클럽맨’ 이동현, 끝까지 ‘롸켓’ 다웠던 그의 마지막 등판 :: The Importance of History

[KBO Legend] LG 트윈스 ‘원클럽맨’ 이동현, 끝까지 ‘롸켓’ 다웠던 그의 마지막 등판

Posted by Rintaro
2019.10.01 18:05 KBO Player History

두산 베어스가 기적 같은 역전 한국시리즈 직행에 1승 만을 남겨 뒀다. 김태형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9월 2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9시즌 KBO리그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4안타를 때려내며 3-0으로 승리했다.

 

LG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무실점 승리를 거둔 두산은 오는 10월 1일 NC 다이노스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승리를 따내면 SK 와이번스의 최종전(9월 30일 한화 이글스전) 결과와 상관 없이 상대 전적에서 앞서 87승 1무 55패의 성적으로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짓게 된다.

 

두산은 3회까지 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선발 이용찬이 팔꿈치 통증으로 조기 강판됐지만 두 번째 투수 이영하가 6이닝 3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16번째 승리를 따냈다.

 

이날 LG는 4안타의 빈공에 시달리며 한 점도 뽑지 못하고 패했지만 투·타에서 주력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키며 총력전을 펼쳤다. 2019년 9월 29일, LG에서만 19년 동안 활약한 ‘롸켓’ 이동현의 은퇴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진|2019년 9월 29일 은퇴식을 가진 ‘롸켓’ 이동현 (출처.LG 트윈스)

 

남은 인대를 모두 LG 트윈스에 바친 프랜차이즈 스타

 

서울 영일초-영남중-경기고를 졸업한 이동현은 중학 시절까지 외야수로 활약하다 서울고 진학 후 투수로 전향했고 2학년 때 경기고의 야심찬 ‘야구명문 부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동현은 경기고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초기 언더핸드에서 정통파 오버핸드로 투구 폼까지 교정하면서 곧 전국 레벨의 투수로 성장한 이동현은 특히 3학년이던 2000년 황금사자기에서 경기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100년 만의 고교 메이저대회 우승과 MVP, 우수 투수상을 휩쓸기도 했다.

 

이런 맹활약을 바탕으로 이동현은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 정근우(이상 한화 이글스) 등과 함께 차출되어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IBAF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며 ‘에드먼턴(Edmonton·캐나다 도시명) 키즈’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당시 계약금 3억 2,000만 원을 받으며 LG에 입단한 이동현은 2001년 개막전에서 파격적으로 선발 등판했다.

 

그만큼 이동현이 주목 받는 유망주이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당시 LG 마운드가 김용수의 은퇴와 장문석, 최향남, 최원호 등 주축 투수들의 부상으로 개막전에 내보낼 투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동현은 고졸 신인이었지만 강하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2001시즌, 개막전 선발 등판을 포함해 총 33경기에 출장했고 그 중 19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하지만 이동현은 입단 첫 해 4승 6패 평균자책점 5.37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동현의 잠재력이 폭발한 시즌은 저조한 승률을 기록 중이던 이광은 감독이 해임되고 2군 감독이자 수석코치, 감독대행을 맡았던 김성근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2002년이었다.

 

2002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신윤호가 부진하자 마무리로, 야생마 이상훈이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중간 계투로 전천후 활약한 이동현은 8승 3패 6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2.67의 성적으로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특히 LG가 4위 턱걸이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할 한국시리즈까지 내달리는 동안 이동현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위기 상황마다 등판하면서도 10경기 3승 평균자책점 1.99로 역투한 이동현은 LG 팬들로부터 ‘영구 까임방지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선발 등판 한 번 없이 불펜으로만 78경기(78경기는 2002시즌 팀 내 최다 출장 기록)에 등판해 124.2이닝을 던진 이동현의 팔꿈치는 이미 고장의 징조를 보였다.

 

2003년에는 새 감독 이광환에 의해서 선발투수로 전환하였으나, 33경기 4승 10패 평균자책점 4.05의 그다지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이상훈이 새 감독 이순철과의 마찰로 인해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고, FA(자유계약선수)로 영입한 진필중의 부진으로 다시 마무리를 맡아 48경기 1승 3패 5홀드 12세이브 평균자책점 2.87로 합격점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8월 팔꿈치 부상으로 2군으로 이동현은, 이 때부터 장장 5년의 끔찍한 수술 재활 사이클이 시작된다. 물론 입단 직후부터 약 3년 반을 무자비하게 굴러다녔던 것이 사실이지만, 누가 봐도 가장 영향이 컸던 건 2002년의 무리했던 투구였다.

 

2004년 12월 첫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이동현은 8개월 만에(당시 이순철 감독의 이동현을 포함한 전력 구성으로) 무리한 재활을 서두르다가 통증이 재발했고 겨우 1년 만에 두 번째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았다.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이동현은 2007년 1월 LG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훈련을 시작한다. 그러나 또다시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했고 이동현은 이때 야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주위의 도움과 자신의 굳은 의지로 결국 2007년 11월 두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는다.

 

그렇게 이동현은 수술과 군복무, 그리고 다시 수술로 이어지는 기나긴 재활 기간을 보내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4년이나 마운드를 비웠다. 그리고 그 사이 LG는 두 번이나 최하위를 기록하며 창단 후 최악의 암흑기를 보냈다.

 

2009년 기적처럼 마운드에 복귀한 이동현은 5월 20일 무등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공을 던졌다. 그러나 최고 구속은 138km/h. 기나긴 시련이었다.

 

2009시즌 34경기에 나와 1승 평균자책점 5.23을 기록했지만, 성적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은 이동현이 성공적으로 마운드에 복귀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아니, 그냥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리고 2010시즌, 셋업맨으로 활약하며 오상민, 김광수 등과 함께 LG 불펜의 필승조로 자리매김한 이동현은 특히 시즌 초반, LG로서는 꿈 같은 이야기인 막강한 불펜을 형성하며 팀 내 핵심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봉중근을 제외한 선발진이 이닝을 소화해주지 못하고 부진하자 곧 불펜의 부담이 심해졌고, 노장인 오상민, 이상열 등이 먼저 컨디션을 잃어가면서 이동현의 부담은 더 커졌다.

 

결국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던 이동현이지만 여름 들어 당시 마무리인 오카모토 신야가 맞아 나가자 점차 마무리로 등판하는 일이 잦아졌고 시즌 후반에는 이동현 본인조차 구위가 떨어져 김광수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마무리 역할도 했었다.

 

마치 2002년과 같은 시즌이었고 68경기 7승 3패 15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3.53의 성적을 기록한다. 무엇보다 이게 5년 간 재활하고 인대 수술을 세 번한 투수의 성적이라는 거다.

 

2010년 성공적으로 복귀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이동현은 “내 마지막 남은 인대는 LG에 바치겠다”는 명언을 남겨 LG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 LG의 가을야구 재입성의 순간 이동현은 2년 연속 20개 이상의 홀드를 기록하며 LG 불펜의 핵심으로 맹활약했다.

 

반면에 이동현이 5승 5패 11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4.40으로 주춤한 2015시즌에는 9위로 추락했다. LG는 프로 입단 15년 만에 FA자격을 얻은 이동현에게 3년 총액 30억 원의 계약을 선물했다.

 

사진|2019년 9월 29일 이동현의 은퇴식이 열린 잠실구장 (출처.LG 트윈스)

 

우승 반지 없는 이동현이 LG 트윈스의 레전드인 이유

 

이동현은 2000년대 팀의 화려한 시절을 함께 보냈고 그 순간을 만든 주역이었던 이유로 무려 4년이 넘는 공백을 감수해야 했던 투수다. 따라서 이동현이 불꽃 투혼을 발휘했던 2002시즌을 기억하는 LG 팬이라면 이동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동현은 성적이 조금 부진해도 팬들에게 좀처럼 비난을 받지 않는다. LG 마운드에서 속된 말로 ‘까임방지권’을 소지한 유일한 투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동현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자신의 책임을 소홀히 하는 투수는 결코 아니다. 이동현은 2016년 4월 2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통산 100홀드를 달성했다.

 

이동현은 2014시즌 이후 전성기 만큼의 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묵묵하게 후배들을 이끌며 LG 불펜의 정신적 지주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어느덧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노장 투수가 된 이동현은 FA 계약을 체결한 3년 동안 9승 10패 14홀드 9세이브에 그쳤다.

 

이동현이 6억 원의 연봉을 받고 활약하던 FA 계약 기간 동안 KBO리그는 그 어느 때보다 ‘타고투저’ 현상이 심했고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기량하락)까지 겹치면서 성적이 점점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동현의 2019시즌 연봉은 1억 원으로 삭감됐고 통산 700경기 등판을 달성한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현역 마지막 등판에서 박세혁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후 오른손을 번쩍 드는 ‘롸켓’ 이동현 (출처.LG 트윈스)

 

이동현은 현역으로서의 마지막 등판이었던 9월 29일 두산전에서도 끝까지 이동현 다웠다. 0-3으로 뒤진 7회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해 6개의 공으로 박세혁을 삼진 처리한 이동현은 LG에 바친 자신의 오른팔을 번쩍 들며 19년의 현역 생활을 멋지게 마감했다.

 

이동현은 올 시즌 고우석, 정우영, 김대현 같은 젊은 투수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5경기 등판에 그쳤지만 5이닝 동안 단 하나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동현은 프로 생활 19년 동안 통산 701경기에 출전해 53승 47패 113홀드 41세이브 평균자책점 4.06의 성적을 남기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사실 오랜 프로 생활에 비하면 우승 경험도 없고 가을야구 등판도 21경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동현은 700경기 이상 등판한 12명의 투수 중에서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한 유일한 ‘원클럽맨’이다. LG의 선수이기 전에 LG의 팬으로 살았던 시간들이 행복했다는 이동현이 LG의 ‘레전드’로 대우받아야 하는 이유다.

 

◆ LG 트윈스의 ‘롸켓이동현의 은퇴식 스케치

 

 

 

 

 

 

 

◆ 이동현의 통산 투구 기록

 

 

“다만 아쉽다면,

우리 LG가 우승하는 순간에 나의 인대를 팀에 바치겠다는 약속지키지 못한거에 아쉽지만,

이제는 제가 아닌 저희 아들 정후가 야구를 하겠다고 하면

함께 공 던져줄 인대는 남겨놓았다 생각해주세요.

LG에 입단하게끔 하려면 아빠가 도와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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