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Legend] 부산 야구의 혼 ‘악바리‘, ‘탱크’ 롯데 자이언츠 박정태

[KBO Legend] 부산 야구의 혼 ‘악바리‘, ‘탱크’ 롯데 자이언츠 박정태

부산이 아닌 곳에서 박정태라는 이름은 그저 괴상한 모양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던, 그저 제법 성적이 괜찮던 타자에 대한 짧은 기억을 끌어낼 뿐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그 이름은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신나고, 흥분되고, 끓어오르고, 또한 안타깝고 애잔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은퇴를 했을 뿐 아니라, 멀리 태평양 건너로 떠나버린 박정태가 있을 리 없는 부산 사직구장에는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아직도 가끔 박정태의 얼굴이 큼직하게 박힌 플래카드가 내걸리고는 한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는 그의 투박한 명언이 적힌 채로 말이다.

사진|부산 사직구장에 걸려있던 플래카드 (출처.롯데 자이언츠)

“신은 부산에 최고의 야구 팬과 최악의 야구 팀을 주셨다”

부산 사람들은 가끔 농담 삼아 이런 한숨 섞인 이야기를 한다. 정말 롯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약한 프로야구 팀이다. 물론, 원년의 꼴찌 신화 삼미 슈퍼스타즈가 있어 기억 속에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지 롯데가 쌓은 성적도 만만치는 않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록한 초유의 4년 연속 꼴찌를 비롯해 38년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무려 아홉 번의 꼴찌가 롯데의 것이었다. 물론 1984년과 1992년, 두 번 우승을 하기도 했지만 유별난 부산 팬들에게는 98%쯤 부족하다.

 

그러나 그 초라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도(球都) 부산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는 언제나 전쟁터고, 축제고, 또 성스러운 의식이다. 내 어릴 적, 야구를 단순한 구경거리로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 롯데 응원석 풍경이었다.

 

전쟁터 혹은 축제...부산 사직구장의 응원석 풍경

봉황기 결승에서 선린상고 ‘노준 오빠’의 발목이 으스러졌을 때 울먹이던 여고생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멀쩡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스탠드에서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광경을 처음 보여준 것이 부산이었다.

 

때로는 불타는 쓰레기통이 날기도 했고, 자기 팀과 상대 팀을 막론하고 팬들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선수단 버스가 제멋대로 드나들 수 없는 것이 부산, 혹은 마산구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최동원과 윤학길이 강호의 모든 방망이를 무릎 꿇리던 시절이나, 4년 연속 꼴찌에 허덕일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열기는 언제나 부산으로 원정 가는 팀들을 주눅 들게 했고, 롯데도 홈에서 만큼은 언제나 강팀이었다.

 

앞으로 10년쯤 연속으로 우승을 한다고 하더라도 팬들의 성원에 다 값하지 못할 롯데가 부산 팬들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마도 박정태일 것이다. 박정태는 단순히 독특한 타격 폼을 가진 선수가 아니며, 단순히 야구를 꽤 잘 했던 선수도 아니다. 박정태는 ‘롯데 자이언츠, 아니 부산 야구의 정신’이라고 불리는 사나이다.

사진|롯데 자이언츠 입단 초기의 박정태 (출처.롯데 자이언츠)

‘탱크’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박정태의 키는 173cm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프로야구 전체를 통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단신이었다. 게다가 단신의 선수 치고는 다리도 빠른 편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파워나 스피드, 어느 쪽도 특출날 것 없는 선수가 박정태였다.

 

그러나 뻔히 가망 없는 타구를 날리고도 매번 죽자 살자 사지를 흔들며 달리는 모습은 덕아웃에서건 관중석에서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뿐인가. 덩치가 배는 됨직해 보이는 포수를 부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돌진하는 격한 홈 슬라이딩에는 브라운관 밖의 상대 팀 팬들마저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1993년 5월 23일. 그때만 해도 프로 3년차 박정태는 잘 치고, 또 열심히 하는 기특한 선수에 불과했다. 그날 1루에 나가 있던 박정태는 후속 타자가 병살타성 땅볼을 날리자 언제나와 같이 ‘죽자 살자’ 달려서 ’죽일 듯한’ 슬라이딩을 날렸고, 태평양 유격수 염경엽과 충돌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곧바로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갔다. 발목뼈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복합골절’. 선수 생활은 커녕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그때까지의 타율이 0.359. 한창 방망이에 불이 붙던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유망한 젊은 선수 하나가 그대로 사그라진다고 했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그날은 오히려 진정한 ‘박정태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부서져버린 발목을 세우느라 숱한 철심을 박아 넣는 다섯 번의 수술 그리고 당연히도 눈물겨웠을 초인적인 재활치료가 이어졌지만 박정태는 끝내 일어섰기 때문이다.

 

박정태 신화의 시작

박정태는 침대 위에서마저 배트를 손에서 떼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도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는 자신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정태는 1995년 5월 16일, 그러니까 1주일이 모자라는 만 2년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LG 트윈스와의 경기였고, 절대적인 운동량 부족 때문에 ‘짝짝이’가 되어버린 두 다리로 돌아온 박정태는 첫 타석에서 거짓말처럼 안타를 때려냈다.

 

2년 전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신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성적은 4타수 3안타였고 그 해 시즌 타격 성적은 0.337였다.

사진|한 손을 떼고 양쪽 다리를 건들거리던 박정태만의 타격 폼 (출처.롯데 자이언츠)

그러나 박정태 신화가 단순히 눈물겨운 인간 승리의 재활 스토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 신화의 결정판은 1999년 10월 20일,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플레이오프 7차전이었다.

 

양대 리그로 치러진 그해, 드림리그 2위 롯데는 매직리그 1위였지만 승률이 부족했던 삼성 라이온즈와 4선승제 플레이오프를 치렀고, 1승 3패까지 몰렸던 5차전에서 터진 펠릭스 호세의 역전 끝내기 3점 홈런과 6차전에서 박석진의 7이닝 퍼펙트로 회생해 최종전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0-2로 끌려가던 6회, 1점을 만회하는 홈런을 날리고도 관중석에서 날아든 물병에 급소를 맞은 호세는 흥분해서 관중석으로 방망이를 집어던졌고, 곧장 퇴장을 명령받았다.

 

뒤진 상황. 중심 타자는 퇴장 당했고, 흥분한 관중석에서는 끊임없이 오물이 날아들었다. 암담한 순간. 그때, 주장 박정태는 선수들에게 짐을 싸자고 했고 선수들은 짐을 쌌다.

 

그 순간 롯데 김명성 감독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선수들의 경기 거부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뻔 했다. 감독의 간곡한 설득에 다시 주저앉아 맥없이 글러브를 꺼내 드는 선수들에게 박정태는 한 마디를 던졌다.

 

“알긋나? 오늘은 무조건 이기야 된다. 안그라몬 내가 다 지기삔다!”

 

30분의 경기 중단 뒤에 나선 마해영은 퇴장 당한 호세와 이어지는 ‘백투백’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7회에는 비록 전날에 이어 무리하게 등판한 박석진이 똑같이 김종훈과 이승엽에게 연속 홈런을 내줘 재역전 당했지만, 이번에는 8회에 임수혁이 투런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10회 말 만루 위기를 넘긴 그림 같은 호수비의 주인공 김민재가 연장 11회 초 때려낸 결승타와 11회 말 주형광의 그림 같은 3연속 삼진 마무리까지.

 

푸른색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에 자긍심을...

비록 그날, 박정태는 한 개의 홈런도 날리지 못했고, 역사적인 결승타나 호수비를 보여준 것도 없었다. 그러나 부산 팬들이 그날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박정태다. 구슬을 꿰듯, 선수 하나하나의 가슴에 불을 붙여 롯데라는 하나의 불덩어리로 만들어낸 것이 박정태였기 때문이다.

 

롯데에서만 뛰었던 14시즌 동안, 통산 0.296의 타격. 한 때 최다였던 31경기 연속 안타와 5번의 골든글러브. 1998, 1999년 2년 연속 올스타전 MVP. 훌륭한 성적이지만 ‘최고 중의 최고’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박정태의 가치는 안타 몇 개와 홈런 몇 개가 아니라, 롯데의 푸른 유니폼에 자긍심을 실어놓은 선수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이언츠라는 이름에서 가슴 떨림을 느끼게 해준 선수라는 점에 있다.

 

박정태가 뛰는 경기를 보고 난 다음에는 항상 가라앉지 않는 흥분에 한참 넋을 놓아야 했던, 박정태. 한 번 떠올려 글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을 노곤해지게 하는 이름이여.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