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대마왕’ 김현수는 ‘DTD의 저주’와 당당히 맞서며 LG 트윈스를 바꾸고 있다 :: The Importance of History

‘잔소리 대마왕’ 김현수는 ‘DTD의 저주’와 당당히 맞서며 LG 트윈스를 바꾸고 있다

Posted by Rintaro
2019.06.18 15:30 KBO History/LG Twins

4월 11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이 끝났다. LG 트윈스는 5-2로 승리했고 8승 8패로 KBO리그 4위에 올랐다. LG 주장 김현수(31)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다들 일찍 집에 가서 푹 쉬자” 다음날 경기의 결과는 하늘에 맡기더라도 선수로서 최선의 준비는 하자는 뜻이었다.

 

LG 차명석 단장은 “단장 입장에서 그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날부터 LG는 두산 베어스과 3연전을 치렀다. 2018년 LG는 두산을 상대로 15연패 뒤 간신히 1승을 거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다시 만난 라이벌과의 첫 시리즈. LG는 12승 4패로 1위를 달리던 두산을 만나 2승 1패로 위닝 시리즈를 따냈다. 김현수는 3경기에서 10타수 4안타 3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김현수는 두산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타격기계’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맹구’라는 별명이 익숙했다. 만화 영화 ‘짱구는 못말려’의 캐릭터 중 한 명이다.

 

2008년 한국시리즈 5차전, 끝내기 투수앞 병살타를 치고 1루로 뛰어가다 주저 앉아 울었던, 2009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홈런을 치고도 우천 노게임이 선언된, 비운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11년이 흘렀고, 김현수는 LG의 주장이다. 더 이상 ‘맹구’가 아니다. 김현수의 활약은 LG의 팀 분위기를 확실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LG 류중일 감독은 “리더와 보스는 차이가 있다. 보스는 ‘하라’고 하고, 리더는 ‘하자’고 한다. 김현수는 리더다”라고 말했다.

 

사진선수들과 모여 있는 LG 트윈스 김현수 (출처.LG 트윈스)

 

LG 팬들은 김현수를 두고 ‘이맛현’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맛에 현질한다’는 말의 준말이다. 김현수는 2017시즌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했고 LG와 4년 총액 115억 원에 계약했다.

 

LG 유니폼을 입고 뛴 첫 해 타율 0.362로 타격왕에 올랐다. 20홈런 101타점도 쏠쏠했다. 개인 성적 보다 양석환, 채은성 등 유망주들의 본보기 역할이 더 컸다. 김현수는 직접 이들을 끌고다니면서 야구를 가르치다시피 했다.

 

채은성은 “현수 형 덕분에 루틴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채은성은 0.331 25홈런 119타점을, 양석환은 0.263 22홈런 82타점을 기록했다. 둘 다 커리어 하이였다.

 

지난해 LG 단장이었던 롯데 양상문 감독은 당시 “개인 성적 뿐만 아니라 팀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고려하면 충분히 몸값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맛현’은 ‘이 맛에 현수’의 준말이어도 무방하다. 2019시즌에는 팀의 주장을 맡았고, 팀 전체의 분위기를 확실히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LG의 ‘안녕 세리머니’ 역시 김현수에서 시작됐다.

 

류중일 감독은 “경기 중에 김현수 진짜 말 많데이”라고 웃었다. 더그아웃에서 쉴 새 없이 떠든다. 칭찬과 격려는 물론 꾸중도 적지 않다. 경기 중에도 말이 많다. 투수 교체 때 LG 외야수들은 중견수 중심으로 모인다. 김현수가 주로 떠든다.

 

이천웅은 “지난 5월 1일 kt 위즈전 때 우익수 은성이는 안타 하나 치고, 나랑 현수 형은 못쳤다. 투수 교체 때 또 모였는데 현수 형이 ‘야, 은성이는 쳤으니까 우리 둘이 안타 쳐야 돼’라고 말했다. 현수 형은 뭐든 말 한다”고 말했다.

 

오지환은 “유격수로 나가도 좌익수인 현수 형이랑 진짜 말 많이 하게 된다. 낙구 지점에 따른 역할 구분 등이 주된 대화 내용이다. 요즘에는 ‘이런 건 형이 잡아줘요’라고 내가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팀 분위기의 변화는 ‘대화’와 이를 위한 ‘발화’에서 시작된다.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아는 ‘팀 워크’는 20세기 만화에나 등장하는 클리셰다. 멈춰있는 시간이 많은 야구 종목 특성상 더욱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LG에서 오래 지내고 있는 한 코치는 “솔직히 LG는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분위기가 많았다. 서로 얘기가 많지 않다. 경기 중 실수가 나오면 실수한 선수는 고개 숙이고, 다른 선수는 애써 모른척하는 분위기였다. 그게 서로를 위해주는 거라고 여겼다”면서 “지금은 다르다. 실수를 하면 혼나든 격려받든, 미안하다고 얘기하든 어떻게든 풀고 다음 플레이를 한다. 그게 당연히 좋다. 그걸 김현수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LG 트윈스 김현수가 포수 유강남과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19시즌 주장 김현수는 LG라는 팀의 분위기를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출처.스포츠경향)

 

김현수는 5월 2일 잠실 kt전, 1-3으로 뒤진 3회말 1점 홈런을 때렸다. 32경기 만에 나온 시즌 1호 홈런이었다. 홈런 신고가 늦었다. 경기가 끝난 뒤 “홈런이 안 나와서 답답했다기보다는 팀과 팬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LG는 김현수의 홈런을 발판으로 kt에 5-4 역전승을 거뒀다.

 

8연승 행진이 이어졌다. 연승 비결을 두고 “선수들이 자유롭게 자기 표현을 하는 게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LG가 가장 달라진 부분이기도 하다.

 

오지환은 유망주였던 2011년 9월 1일 SK 와이번스전에서 경기 후반 교체 투입됐다. 6-6으로 맞선 연장 11회말 1사 1, 2루에서 박재상의 타구를 한 번에 잡지 못하면서 실책을 저질렀고 공을 포구할 때 오른손 검지 손톱이 깨졌다.

 

중계화면에는 피가 보였데도 실책에 따른 미안함에 연거푸 괜찮다는 표시만 하고 있었다. 주변의 동료 야수들은 미안해하는 오지환을 애써 모른척했다. 더 미안해할까봐 배려한 것이지만,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그날 경기는 끝내기 패배로 끝났다. 미안함은 짐이 돼 더욱 무겁게 남았다.

 

김용의는 김현수에 대해 “잔소리 대마왕”이라며 웃었다. 김용의는 “현수는 야구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것저것 정말 얘기 많이 한다. 운동해라, 잘 먹어라, 잘 쉬어라, 집에 가서 일찍 자라 등등 잔소리에 형 동생을 가리지 않는다. 이제 안들으면 허전하다”고 덧붙였다.

 

히어로즈에서 뛰다 LG 유니폼을 입은 3루수 김민성은 “현수 형은 원래 두산 시절부터 흥이 많은 흥부자였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은 관심과 함께 그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에서 나온다. 에너지가 넘치지 않으면 자신의 일만 챙기는데도 벅차다.

 

김용의가 말하는 ‘잔소리’는 그만큼 김현수가 에너지 넘치는 선수라는 뜻이다. 김현수는 ‘잔소리’에 대해 “원래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말을 해야 한다. 눈치 보지 않는다. 옳은 얘기라면 다시 안 봐도 된다는 생각으로 직설적으로 얘기한다”고 말했다.

 

사진LG 트윈스 김현수가 이형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출처.LG 트윈스)

 

류중일 감독이 인정한 김현수의 ‘리더십’은 쉼없이 떠드는 ‘잔소리’와 함께 솔선수범에서 나온다. 오지환은 “현수 형이 그런 얘기 할 때가 있다. 라커에서 ‘타자들이 오늘 너무 못 쳤다. 내일 잘 치자’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고 나서 실내 연습장에 가 보면, 현수 형 혼자 타격훈련 하고 있다. 그럼 우리도 안 할 수 없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말 해 놓고 자기가 먼저 하는 스타일이다”라고 말했다.

 

채은성은 “통역이 한 번 현수 형 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형은 돈도 많이 벌었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해요?’라고. 그때 현수형이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남들하고 똑같이 하면 되겠냐’고 답하더라. 사실 돈과 명예를 다 가졌지 않나. 편하게, 흘러가는대로 할 수도 있는데 더 잘하기 위해 진짜 준비를 완벽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 리더십은 친정팀 두산에서 배웠다. 김현수는 “(손)시헌 형과 (이)종욱 형이 정말 잘 해줬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혼내고, 달래주고가 아니라 스스로 모범이 되는 리더십이었다. 먼저 앞에 나섰고, 뒤를 자연스레 따르게 만들었다.

 

김현수는 “그 형들에 비하면 나는 나쁜 형에 가깝다”며 웃었다. 양석환을 성장시킨 것은 ‘착한 형 김현수’가 아니라 ‘나쁜 형 김현수’였다. 지금은 다른 팀에 있는 LG 출신 코치는 오래 전 “양석환은 뭐랄까 조금 샤이(Shy)한 면이 있었다. 그게 늘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현수는 그런 양석환에게 막 들이댔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김현수는 “나는 좋은 얘기만 하지 않는다. 반응이 없어도 괜찮다. 해야 할 말을 석환이에게 막 하고 그랬다. 그러다 보니 석환이가 따라오더라”라고 말했다.

 

양석환은 ‘김현수 바라기’가 됐고, 김현수와 함께 운동했다. 2018시즌 22홈런을 때리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양석환은 올 시즌 상무에서 뛰며 퓨처스리그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다.

 

사진|국가대표에 발탁돼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LG 트윈스 김현수 (출처.OSEN)

 

김현수를 떠들게 만들고, 솔선수범하게 만들고, 막 들이대게 만드는 것은 ‘승부근성’이다. 두산 신고선수(현 육성선수) 시절, 하루에 공 1,000개씩을 때렸다.

 

김현수는 “느낌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휘둘렀다. 성에 차지 않으면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쓰라린 패배 앞에서 몇 번이나 주저 앉았다. 2007년, 2008년, 2009년 모두 가을야구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2008년 한국시리즈 타율 0.048이었던 김현수는 마지막 병살타를 때리고 눈물을 흘렸다. 2013년 한국시리즈 때 김현수는 타율 0.333를 치고도 리버스 스윕을 막지 못한 채 망연자실했다.

 

쓰라린 패배의 기억은 승리의 간절함을 만든다. LG 김재걸 코치는 “아웃 하나하나에 저렇게 아쉬워하는 선수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LG 포수 이성우는 “모든 행동이 승리에 맞춰져 있다. 이기기 위해 모든 걸 한다. 더그아웃에서 소리치는 것도, 후배들한테 쓴소리 아끼지 않는 것도 다 승리를 향한 방향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SK 있을 때 (박)정권이 보면서 그런 걸 느꼈는데, 김현수도 정말 팀을 잘 이끌어간다.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김현수는 2016~2017시즌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뛰었다. 2시즌 동안 타율 0.273 7홈런 36타점을 남겼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는 기쿠치 유세이의 말을 빌자면,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성장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2시즌에 대해 “지루함을 이기는 법에 대해서 배웠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미친 듯이 방망이만 휘둘렀던 소년은 이제 베테랑이 됐다. 김현수는 “이제는 항상 내 몸이 똑같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대신, 똑같아 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안다”고 설명했다.

 

과거 ‘좋아지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 ‘같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야구가 바로 그런 종목이다. 한 시즌 144경기를 치른다. 한 경기의 내용과 결과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항상성’을 유지하는 팀이 결국 좋은 결과를 내는 종목이다.

 

전날 어이없는 패배를 당했어도 다음날 ‘보통’으로 돌아와 ‘똑같은’ 플레이를 해야 한다. LG가 지난해 두산에게 15연패를 당한 것은 어쩌면 그 부분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른다.

 

사진LG 트윈스 김현수(가운데)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출처.LG 트윈스)

 

김현수는 “그래서 지루함을 이기는 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똑같아지기 위해서는 똑같음을 유지하기 위한 정말 지루한 준비가 반복돼야 한다.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 편안하지 않다. 지루함의 반복이다. 하기 싫은 반복 훈련을 해야 하고, 하기 싫은 무게를 들어야 한다. 김현수가 LG 선수들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하는 것은 그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한 외부 자극이다. 지루함에 갇히는 순간, 지루함이라는 괴물에 잡아먹힌다.

 

4월말과 5월초 거침없이 8연승을 달리던 LG는 두산과의 어린이날 시리즈를 모두 내주면서 또다시 흔들렸다. 5월 3일부터 5월 22일까지 4승 12패로 주춤했다.

 

팀 주변에서 이른바 ‘DTD의 저주’라는 악마가 스멀스멀 연기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이 기간 팀 타율은 0.238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김현수의 타율 역시 팀 타율과 똑같은 0.238였다. 하지만 2019시즌, LG는 주장 김현수의 잔소리 속에 ‘항상성’과 ‘회복탄력성’을 가진 팀이 됐다.

 

LG는 5월 23일부터 치른 22경기에서 15승 6패로 살아났다. 김현수는 같은 기간 타율 0.352로 팀 상승세를 이끌었다. 잠잠했던 홈런도 3개가 나왔다.

 

김현수는 “팀이 주춤하던 기간에도 모든 걸 똑같이 했다. 똑같이 경기를 준비했고, 더그아웃에서 똑같이 떠들었다”면서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다. 우리는 언제나 베스트이고, 지루함과 싸워 이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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